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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판례 소개] 무죄추정의 원칙과 성인지감수성

형사 일반2024.05.17. 13:38

안녕하세요. 법률사무소 화랑 이지훈 변호사입니다.

오늘은 성인지 감수성의 의미와, 성인지 감수성을 제한하는 대법원 최신판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할 시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는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과 간접사실을 평가하여 범죄사실의 존재 여부를 추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판단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피해자다움’을 전제로 피해자라면 마땅히 보여야 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거나, 피해자의 반응으로는 수긍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고 해서 가볍게 피해자의 진술의 증명력을 배척하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를 형사판결에 원용한 첫 대법원 판결인 2018도7709 판결은 아래와 같이 판시하였습니다.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내린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도7709 판결). 이 대법원 판결은 법에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피해자의 진술을 쉽게 배척해서는 안된다고 판시하여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을 최초로 반영한 대법원 판례로 주목을 받았고, 이러한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여 다수의 구체적 물증이 없는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유죄가 선고되기도 하였습니다.

"범행 후의 피해자의 태도 중 '마땅히 그러한 반응을 보여야만 하는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 사정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할 수 없다"(대법원 2020. 10. 29. 선고 2019도4047 판결).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즉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하지만 반대로 피해자가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 명시적으로 동의한 바도 없었고, … 당시는 다른 직원들도 함께 회식을 하고 나서 노래방에서 여흥을 즐기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즉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해 피고인의 행위에 동의했다거나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 아니했다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 2020. 3. 26. 선고 2019도15994 판결).

성인지 감수성을 제한하는 대법원 판례(2024. 1. 4. 선고 2023도13081 판결)

자폐성 환자인 피고인은 병적인 반복행동으로 인한 우연한 접촉임을 일관되게 주장했고,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도 제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진술만을 근거로 고의적인 성추행이라며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은 논리칙과 경험칙에 반한다며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하였습니다.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방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에는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하여야 하므로, 개별적ㆍ구체적 사건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지만, 이는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제한 없이 인정하여야 한다거나 그에 따라 해당 공소사실을 무조건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피고인이 일관되게 공소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공소사실을 인정할 직접적 증거가 없거나, 피고인이 공소사실의 객관적 행위를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고의와 같은 주관적 구성요건만을 부인하는 경우 등과 같이 사실상 피해자의 진술만이 유죄의 증거가 되는 경우에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더라도 피고인의 주장은 물론 피고인이 제출한 증거, 피해자 진술 내용의 합리성ㆍ타당성, 객관적 정황과 다양한 경험칙 등에 비추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기에 충분할 정도에 이르지 않아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피고인이 수사과정에서 공소사실을 부인하였고 그 내용이 기재된 피의자신문조서 등에 관하여 증거동의를 한 경우에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증거능력 자체가 부인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 내용이나 진술의 맥락ㆍ취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그 중 일부만을 발췌하여 유죄의 증거로 사용하는 것은 함부로 허용할 수 없다.


2018년 '성인지감수성'을 설시한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이후, 성범죄 사건에서 다른 증거 없이도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만으로도 유죄가 쉽게 인정되는 잘못된 관행이 형성되었고, 이를 면하기 위해서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자신에게 죄가 없음을 적극적으로 입증하여야 하거나

실형을 피하기 위하여 거짓으로 죄를 인정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위 대법원 판결(2023도13081 판결)은 종전의 '성인지감수성'을 내용으로 하는 기존의 대법원 입장을 번복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지감수성'을 이유로 하더라도 이것이 형사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 보다는 우위에 설 수 없다는 당연한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으로서, 실무상 잘못 확대 해석되고 있는 '성인지감수성'에 관한 판례의 내용을 구체화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범죄 사건에서 무죄 판결의 빈도가 늘어나게 되는 만큼 사건 수사 초기 단계에서부터 신중하게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준비할 필요가 있고, 무죄를 주장한다면 명확한 증거자료를 통하여 확실하게 입증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성범죄 관련 사건에 연루되셨다면, 관련 사건 경험이 많은 이지훈 변호사의 조력을 받으셔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시는 것을 권유드립니다.